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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진실을 볼 줄 아는 삶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19-08-13조회 : - 첨부파일 : 등록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서울에 올라가 전철을 탔는데 이런 노인을 만났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 할아버지는 30년을 넘게 맨발로 전철을 타고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외치는 소리들은 여간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 천당, 영생 구원”하는 것을 봐서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들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볼 수 록 아름다운 미스 코리아, 유관순!” “볼 수 록 아름다운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민영완 대감, why why why two Korea?” 사람들이 “왜 신발을 신지 않느냐?”고 묻자 “통일이 되면 신발을 신겠다.”고 대답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색도 초라하기에 사람들은 그분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사이비 이단 종파에 빠진 광신자쯤으로 여겼습니다. 2001년 어느 날, 90을 넘긴 이 할아버지는 인천 가는 전철 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왜 이런 삶을 살다 그렇게 생을 마쳤을까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상감독으로 활동하던 김우현 감독이 그 할아버지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분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고, 인터뷰하면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아니 알 수 도 없었던 그분의 삶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일찍 일본으로 유학을 가셨습니다. 그 유명한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고, 5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그곳에서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스승들을 만나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기에 이 어른은 상해로 건너가 김구 주석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와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셨습니다.
원래 이분 집안은 부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습니다. 김포공항 앞쪽 땅 수십 만 평이 이 분의 소유였고 그 외에도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 이분은 집 없는 사람들을 데려와 먹이고 재우기 시작했습니다. 6.25전쟁으로 남으로 피난을 와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땅으로 불러 거처를 삼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자신이 교회터로 삼은 3천 평만 남기고 그 땅 전부를 그곳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다 과로로 쓰러졌는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시자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 때부터 거리를 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리고, 느슨해 질까봐 맨발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독립운동가입니다. 정부가 훈장과 연금을 받으라고 연락을 했는데그의 대답입니다. “아직 통일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훈장입니까?” “돈 받으려 한 일이 아니니까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으면 무시합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그렇게 믿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나, 놀라운 진실을 마주 할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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