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황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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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 20200202 -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0-02-04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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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에 복음이 제일 먼저 들어온 나라는 인도입니다. 18세기 말부터 유럽의 개신교회들은 인도와 중국 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1706, ‘근대선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독일의 지겐발크(Bartholomaus Ziegenbalg) 선교사님을 필두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인도 선교에 헌신하셨는데 성경번역, 교회개척, 신학교 설립을 통해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이로부터 100년 후인 18079, 영국 런던회 소속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선교사님이 중국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으셨습니다. 이분이 처음으로 영어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했는데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이 바로 이분이 번역한 성경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보다 대략 50년이 늦은 1859년에 여섯 분의 미국 선교사(윌리엄스, 리킨스와 베르백, 브라운, 시몬스, 헵번)님들이 입국하면서 일본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선교는 일본 본토의 복음화뿐 아니라 아시아 선교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선교는 공식적으로 1885,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가 인천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인도보다는 대략 180년이 늦었고, 중국과는 80년의 차이가 납니다. 일본보다도 30년은 늦게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선교 135년이 지난 오늘 보니까 인도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국가에서의 복음화율은 대략 3%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파송 선교사와 교회의 숫자만 봐도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18세기와 19세기, 서양에 의한 선교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mission by force, 힘에 의한 선교와 mission by love, 사랑과 헌신에 의한 선교입니다. 힘에 의한 선교는 선교지를 식민지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를 강요한 것입니다. 노동력, 원자재 등을 착취했고, 그곳 사람들을 종처럼 부렸습니다. 간디라는 영화를 보면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인데 혹독하게 다룹니다. 그러니까 식민지가 끝나면서 선교도 끝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Mission by Love, 사랑과 헌신의 선교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의 대부분이 이런 분들인데 그분들은 학교와 병원, 고아원들을 세워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고종황제의 주치의였던 에비슨(Oliver R. Avison) 선교님은 백정마을로 가서 그들을 치료했습니다.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 받던 이 땅의 백성들과 함께 아파했고,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여성전문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선교하다 돌아가시면, 부인과 자녀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고, 그 뒤를 이어 손자 손녀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묻혔습니다. 그들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기독교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고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데 특별히 사람을 대하는 태도(Attitude)가 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 모두는 형제”, 이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 모두를 세상에서 다르게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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