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황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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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 20210228-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1-03-02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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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제게 들려주신 말씀 중에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 어머니 고향은 강원도 양구셨는데요, 북한을 지척에 둔 곳입니다. 6.25 전쟁이 나고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채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군인 뿐 아니라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상검증을 해요. 지주나 군인, 경찰가족들을 색출해 반동이라고 끌고 갔는데요, 제 어머니도 끌려가셨어요. 가서 보니까 이웃마을에서 온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였어요. 밤새도록 조사를 받았고요, 그 다음날 다섯 명씩 줄을 맞춰 앉혀놓고는 불러내다 총살을 시키는 거예요.

      얼마가 지나자 앞에 앉았던 사람들이 거반 다 나갔고요, 앞에 몇 줄이 남질 않았어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는데요, 누가 어깨를 툭툭 쳐요. 그리고는 언니?” 그래요. 여기서 언니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요. 가만히 있었더니 더 세게 치는 거예요. “언니??” 그래서 고개를 들어보니까요, 인민군 여자 장교가 서 있어요. “나를 모르겠냐고?” “같은 동네에 살던 누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정말 어려서 함께 자랐던 동네 동생이에요. 지금 막 이곳으로 배속 받아 왔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제일 높은 사람에게 가서 탄원을 했어요. 그래서 살아났는데요, 그 동생이 제 어머니를 살려 준 이유가 있어요.

      어릴 적 그 동생은요, 동네에서 왕따였어요. 미운 짓을 하고요, 너무나 이기적인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도 그 아이와 놀려고 하질 않아요. 피하고 눈총을 줘요. 그런데 제 어머니가 그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었어요. 챙겨주고, 놀아주고, 먹을 것이 생기면 함께 나눠먹었는데요, 그것이 그렇게 고마웠던 거예요. 성장한 후 어느 날 부터인가 동네에서 사라졌는데요, 북쪽으로 넘어가 장교가 된 거예요. 만약 어린 시절 함께 왕따를 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모두 소중한 거야!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때 그것이 복이 되는 거야!!” 사실 우리는요, 이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대하며 살지는 못해요. 왜 그럴까요?

      제가 전에 목회했던 교회에 장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미국의 에모리 대학 밑에서 구두수선을 하셨는데요, 어느 날 노인 한 분이 신발 여러 켤레를 가지고 수리해 달라고 오셨어요. 보니까 많이 낡았어요. 그래서 고치는데 돈이 더 든다.”, 그러니 고치지 말고 새로 사시라.”, 그분을 생각해서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은요, “아니라고, 고쳐 달라.”는 거예요. 기분이 상해서 에이, 고집스런 노인네??” 속으로 그러고요,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요. ‘제임스 레이니’, "제임스 레이니? 내가 아는 분인데?" 그러자 그분이 물어요.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그래서 에모리대학 총장하시고, 주한 미국대사하신 분이라고 하자 그분이 말해요.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그런데 장 집사님이 보니까요, 너무 허름하고 아닌 것 같아요. 믿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그럼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요, 친구들이 많다는 거예요. “누구냐고?” 그랬더니요, “김대중, 이홍구, 김영삼 등등그래요. 장 집사님 이야기에요. “목사님, 제가 크게 두 가지를 실수 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 것이고요, 둘째는 내 감정을 따라 사람을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 그리고 내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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