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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기도와 믿음으로 불가능을 넘어선 화가, 박수근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1-09-11조회 : - 첨부파일 : 등록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번 여름휴가는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양구에서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박수근 화백은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어요.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때 아버지가 광산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했어요.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요, 어머니마저 병을 얻었어요. 그는 우물에 가서 물을 깃고, 맷돌에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했습니다. 집안 살림살이를 도맡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미술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추억합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그림을 그릴 때인가요? 사람들은요, 이런 상황이 되면 현실적이 돼요. “그림을 그린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림 그릴 형편이 안 되니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포기해요. 그런데 아세요? 불가능한 그 일과 현실은요, 하나님의 사람들에겐 축복의 기회가 돼요. 어린 박수근은 혼자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그리고 기도해요. “하나님,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고요, 그림 그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그의 이런 신앙은요,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만날 때마다 빛을 발해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어요. 화가의 꿈도 접어야지요? 그런데 그는요, 그림공부를 혼자서 독학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스케치를 했고요, 동네를 다니며 일하는 아낙네와 나물 뜯는 소녀들을 수채화로 그렸어요. 그는 후에 이 때가 자신을 위대한 화가로 키운 시기였다고 고백해요. 위기가 기회가 된 거지요? 그가 18세 되던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번째 출품을 했어요. “봄이 오다.”라는 제목의 작품인데요, 이른 봄의 농가를 그린 수채화에요. 그는 입선을 했고요, 그래서 화가로 정식 데뷔했어요. 당시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요. 미술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조선인이 그렇게 큰 대회에서 입선을 했다는 것은요, 기적 같은 일이에요.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거지요?
21세 때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셨고요, 아버지는 늘어난 빚으로 인해 금강산으로 잠적했어요.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박수근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았어요. 그런데 고통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람은요, 그 때 받는 은혜도 있어요. 삶의 바닥에 서 보면요, 인간의 내면이 보여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깊이 알게 돼요. 그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그의 그림이 삶에 대하여,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말을 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1936년,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 “일하는 여인”으로 두 번째 입선을 했어요. 그의 믿음과 진실함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한 거지요?
정말 그래요. 6.25 전쟁 이후에 그는요,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었어요. 그 일로 미군 부인들에게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요, 미국인 미술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을 사기 시작해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의 그림이 전시되면서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그의 PX 시절 일화가 박완서님의 소설, “나목”으로 등장하면서, 그의 삶 전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오늘 그에 대한 화단의 평가에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린 화가,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죽은 다음에 유명해져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그림 값이 비싼 화가...” 미술관을 통해 그분을 만난 제가 그에 관해 한 줄을 덧붙인 다면요, “기도와 믿음으로 불가능을 넘어선 화가, 박수근”이라고 적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믿음은 이런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고요, 기도는 그 믿음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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