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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거듭남,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4-08-11조회 : - 첨부파일 : 등록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WHO,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10월 28일을 세계 소아마비의 날로 지정했어요. 그런데 이 날은요,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인 조너스 소크(Jonas Salk 1914.10.28.~1995.6.23.)의 생일이에요. 조너스 소크 박사는 1914년 10월 28일,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재봉사였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겠지요? 그가 어릴 적 기억하는 뉴욕은 이민자들이 갑자기 밀려와 도시가 터져나갈 지경이었어요. 상하수도 시설은 열악하고, 집도 부족하니까 청결하지 못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살다보니 전염병이 자주 발생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성장한 조너스 소크는요, 원래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가 되길 원했어요. 그래서 의대에 지원하는데요, 당시만 해도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어요.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마지막으로 그를 받아 준 학교가 뉴욕의과대학이었어요.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된 그는 피츠버그 의과대학 연구실에 들어갔어요.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어요.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때였는데요, 미국 전역은 또 다시 소아마비의 공포로 신음을 했어요. 한 해에 무려 5만 8천 건의 소아마비 환자가 보고되었고요, 그 중 3,145명이 사망했어요. 낫는다고 해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지요? 비극적이에요. 그래서 그가 바이러스 연구에 관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라워요. 1951년, 소아마비 학회 모임을 마치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는데요, 그 배에서 소아마비 국립재단 회장이었던 바실 오크너(Basil O'Corner) 박사를 만나요. 대화를 통해 감동을 받은 오크너 박사는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매년 20만 달러의 파격적인 연구비를 그에게 지원해 주었어요.
소크 박사는 소아마비의 종식을 위해 하루 종일 연구에 매진했어요. 피츠버그 연구실에서 하루 16시간씩 휴일 없이 백신 개발에 몰입했고요, 연구를 시작한 지 7년 만인 1955년, 드디어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했어요. 여러분! 이것은 단지 백신을 개발한 것이 아니고요, 이제부터는 소아마비로 죽고,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청난 발견이고, 발전이지요? 발표 직후부터 그는요,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고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인류의 은인”으로 기억되는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 과 의회로부터 “의회 황금 훈장” 받았어요.
그런데 사람은 이런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난 후 반응을 보면 그가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지 가치관을 알 수 있어요.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며 사는지 세계관을 알 수 있어요. 소크 박사는 백신 개발로 인하여 의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어요. 그뿐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특허를 받고, 제약회사에 넘긴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해요. 자기 뿐 아니라 자손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는 전 세계의 완전한 소아마비 박멸을 위하여 “백신”을 무료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해요. 놀란 기자가 그에게 물었어요. “무려 7년을 넘게 고생해서 얻은 것을 왜 공짜로 줍니까? 특허를 내면 평생을 넉넉하게 사는데요?” 그 때 소크 박사가 이렇게 대답해요. “Could you patent the Sun?" "당신은 태양도 특허를 내실건가요?”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하신 일에 특허를 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것이 그의 가치관이고요, 세계를 보는 눈이에요. 또 한 번 그는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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