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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6 - 내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작성자 : 관리자작성일 : 2020-04-25조회 : - 첨부파일 : 등록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천사같이 목회를 해도 싫어하는 교인들이 있고, 마귀같이 목회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바울이라고 불리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정말 진실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 친구였습니다. 성실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천사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목회지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목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반대로 정말 형편없는 분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교회를 망칩니다. 교인들에게 돈을 빌리고는 돌려주질 않습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좋아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해답을 찾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루디아를 만나 그의 집에 정착했고,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네에는 귀신 들려 점을 보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울 일행을 볼 때마다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귀한 종입니다. 구원의 길을 전하는 분입니다.”(행16:17) 사도 바울이 그 여인을 볼 때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아! 나오라.”(행16:18) 소리쳤습니다. 귀신은 나갔고 여종은 자유로워 졌습니다. 한 영혼을 살렸으니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화를 내며 분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 돈벌이를 하던 주인입니다. 귀신이 나가자 점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수입이 끊어진 것입니다. 화가 난 그는 바울을 향해 “저는 우리의 풍속을 헤치는 자”라고,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킬 자”라고 모함합니다. 고발하여 매질 당하게 하고 감옥에 쳐 넣습니다. 좋은 일을 했는데 왜 그럴까요? 이유는 그 일이 자기에게 손해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천사같이 목회를 해도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요?” 내게는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같이 해도 좋아하는 이유는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게는 잘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 야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사도 바울의 외침입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랬습니다. 더 이상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계속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나 중심이 되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있다면 그 삶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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